수많은 명작을 남긴 지브리 스튜디오, 그중에서도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인생 애니메이션’으로 꼽히죠. 특히 모든 것을 삼키던 기괴하고 외로운 요괴, ‘가오나시(カオナシ)’는 잊을 수 없는 캐릭터인데요. 최근 일본에서는 이 가오나시가 다시 한번 뜨거운 화제의 중심에 섰습니다. 바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직접 밝힌 ‘가오나시의 진짜 의미’가 재조명되면서, 일본 MZ세대의 폭발적인 공감을 얻고 있기 때문입니다. 20년도 더 지난 캐릭터가 왜 지금, 다시 소환된 걸까요?
사건의 발단: 한 편의 TV 재방송
이야기는 2026년 1월, 일본의 인기 TV 프로그램 ‘금요 로드쇼(金曜ロードショー)’에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방영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작품이 방영될 때마다 으레 그렇듯 SNS는 관련 이야기로 달아올랐죠. 그런데 이번에는 조금 다른 지점에서 불이 붙었습니다.
과거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남겼던 코멘트가 다시 한번 수면 위로 떠오른 것입니다.
“가오나시 같은 사람은 우리 주변에 널려 있어요. 다른 누군가와 필사적으로 관계 맺고 싶어 하지만, 정작 자기 자신은 없는 그런 사람들이요.”
이 한마디가 오리콘(Oricon) 등 현지 매체를 통해 다시 소개되자, 일본의 X(구 트위터) 타임라인은 그야말로 난리가 났습니다. 사람들은 ‘소름 돋는다’, ‘감독의 통찰력은 역시 다르다’며 감탄했고, 가오나시의 정체에 대한 분석 글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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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오나시’에 담긴 진짜 의미: 자본주의와 공허한 현대인
그렇다면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말한 ‘자기 자신이 없는 사람’이란 과연 무슨 뜻일까요? 일본의 여러 분석 사이트와 전문가들은 이를 현대 사회의 병폐와 연결 지어 심도 있게 해석하고 있습니다.
정체성의 상실: 가오나시(顔無し)는 이름 그대로 ‘얼굴이 없는 존재’입니다. 이는 현대 사회 속에서 고유한 정체성을 잃어버린 개인을 상징합니다. 그는 센에게 집착하고, 유바바의 목욕탕 직원들을 흉내 내며 그들의 욕망을 먹고 거대해지죠. 만나는 상대에 따라 모습이 변하는 가오나시는, 뚜렷한 자아 없이 타인의 인정과 관계에만 의존하는 우리의 모습을 닮았습니다.
자본주의의 비판: 가오나시가 사금을 뿌리며 환심을 사는 장면은 매우 인상적입니다. 하지만 그 금은 결국 가짜로 변하죠. 이는 물질만능주의와 공허한 소비문화를 비판하는 장치로 해석됩니다. 가짜 돈으로 얻은 거짓된 존중과 관계는 결국 허무할 뿐이라는 메시지입니다. 많은 일본 분석가들은 가오나시를 ‘욕망을 채우려다 되려 잡아먹힌 자본주의의 피해자’로 보기도 합니다.
‘역할’을 통한 구원: 폭주하던 가오나시는 센의 도움으로 모든 것을 토해내고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제니바의 집에서 ‘실 잣는 일’이라는 자신만의 역할을 부여받고 평온을 찾죠. 이는 타인의 욕망을 흉내 내는 삶이 아닌, 공동체 안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고 역할을 다할 때 진정한 행복을 얻을 수 있다는, 미야자키 감독 특유의 따뜻한 시선이 담긴 결말입니다.
“내 주변에도 가오나시가 있다” 일본 현지의 생생한 반응
감독의 코멘트가 재조명되자, 일본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는 그야말로 공감의 장이 되었습니다.
“확실히 주변에 ‘가오나시’ 같은 사람이 있어. 외로워 보이는데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모르겠어.” (X 유저)
“어쩌면 나 자신이 가오나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섬뜩했다.” (Filmarks 코멘트)
“‘좋아요’ 수에 집착하고, 비싼 물건으로 나를 증명하려는 모습이 딱 가오나시네. 감독의 통찰에 감탄했다.” (Yahoo 뉴스 댓글)
이처럼 많은 이들이 가오나시를 단순한 괴물이 아닌, 현대 사회의 외로움과 공허함을 안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자화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특히 끊임없이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며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젊은 세대에게 더 깊은 울림을 준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 안의 ‘가오나시’를 돌아볼 시간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가오나시’에 담은 진짜 의미는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 한국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SNS를 통해 끊임없이 타인과 연결되면서도 극심한 고독을 느끼고, ‘나’ 자신을 찾기보다 남들이 정해놓은 성공의 기준을 좇는 모습. 어쩌면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작은 가오나시가 살고 있는 건 아닐까요?
단순한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넘어, 우리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 된 가오나시. 이번 기회에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다시 한번 감상하며, 내 안의 ‘가오나시’는 안녕한지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요?
지금까지 휴PD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