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에 나온 일본 노래가 2026년 한국 음원 차트 10위권에 등장했습니다. 뜬금없어 보이지만, 일본 밴드 백넘버(back number)의 ‘히로인(ヒロイン)’이 만들어낸 실제 성과예요. 발라드의 왕자 성시경이 불을 붙인 이 기현상의 본질은 단순한 커버 곡의 인기를 넘어섭니다. 국경과 플랫폼의 경계가 허물어진 지금, 하나의 콘텐츠가 어떻게 새로운 생명력을 얻는지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죠.
한 편의 방송 클립이 쏘아 올린 ‘역주행’
모든 것의 시작은 2025년 11월 30일, 성시경이 출연한 일본 후지TV의 예능 ‘치도리노 오니렌챤(千鳥の鬼レンチャン)’이었습니다. 여기서 그는 미션 곡 중 하나로 백넘버의 ‘히로인’을 불렀어요. 특유의 감미로운 목소리와 완벽한 일본어 발음으로 소화한 이 무대는 방송 직후 일본 현지는 물론, 한국 팬들에게도 빠르게 퍼져나갔습니다.
유튜브와 SNS에 올라온 관련 영상 클립들은 자막과 함께 재가공되어 순식간에 1,200만 뷰를 넘기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이 폭발적인 관심은 곧바로 음원 차트에 반영됐어요. 2025년 12월 첫째 주, 유튜브 뮤직 한국 주간 인기곡 차트에 97위로 처음 모습을 드러낸 ‘히로인’은 바로 다음 주 10위로 수직 상승했고, 해가 바뀐 2026년 1월 2일~8일 주간 차트에서는 9위를 기록하며 톱10에 안착했습니다. 10년 가까이 된 노래가 이뤄낸 놀라운 역주행이었죠.
이 현상이 얼마나 강력했는지는 여러 데이터를 통해 입증됩니다. 단순히 한국 유튜브에서만 반짝한 게 아니었어요.
| 플랫폼/차트 종류 | 순위 및 기록 | 비고 (집계 기간) |
| YouTube Music | 한국 주간 인기곡 9위 | 2026년 1월 2일~8일 |
| Billboard JAPAN | ‘Japan Songs (한국)’ 차트 2위 | 2025년 12월 5일~11일 (전주 17위에서 급상승) |
| Spotify | 한국 ‘바이럴 50’ 차트 2위 | 2025년 12월 19일 기준 |
| Apple Music | ‘Top 100: Korea’ 5위 | 2025년 12월 19일 기준 |
| ORICON (일본) | 누적 스트리밍 4억 회 돌파 | 2026년 1월 21일 발표 기준 |
원곡 ‘히로인’은 2015년 JR동일본의 스키 캠페인 ‘JR SKISKI’의 CM송으로 만들어진 곡입니다. 당시 일본의 국민 여동생 배우 히로세 스즈가 출연해 큰 인기를 끌었죠. 이처럼 일본 내에서는 이미 겨울 대표곡 중 하나로 자리 잡은 노래가, 1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한국 리스너들의 플레이리스트를 파고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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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와 별개로 문화는 가까워지고 있다”
일본 현지에서도 이 소식은 꽤 흥미롭게 다뤄졌습니다. 특히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에서는 긍정적인 반응이 주를 이뤘어요.
“성시경 목소리가 정말 잘 어울렸다. 덕분에 원곡도 좋아하게 됐어.”
“10년 전 노래인데 지금 들어도 전혀 촌스럽지 않네.”
“옛날 일본 노래는 멜로디가 아름답고 완성도가 높아.”
“정치와는 별개로 문화는 확실히 가까워지고 있는 것 같아. 비교하면서 대립을 부추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러한 반응들은 음악이라는 문화 콘텐츠가 정치적, 사회적 갈등을 넘어 양국 대중의 마음을 잇는 매개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최근 한국에서 뉴진스 하니가 도쿄돔 공연에서 마츠다 세이코의 ‘푸른 산호초’를 불러 화제가 된 것처럼, 이제는 양국의 아티스트가 서로의 음악을 재해석하고 팬들이 이를 즐기는 모습이 자연스러워지고 있습니다.
플랫폼이 국경을 지운 시대의 히트 공식
백넘버 ‘히로인’의 역주행은 단순히 ‘오래된 명곡의 재발견’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저는 이 현상을 ‘플랫폼이 만든 역수입 히트의 새로운 공식’이라고 부르고 싶어요.
과거에는 공식적인 음반 발매나 방송 프로모션이 있어야만 해외 곡이 알려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한 나라의 TV 방송 클립 하나가 유튜브라는 플랫폼을 타고 국경을 넘어 순식간에 퍼져나갑니다. 팬들이 만든 자막과 편집은 언어의 장벽을 허물고, 알고리즘은 이 콘텐츠를 잠재적 팬들에게 실어 나르죠. 이 과정에서 발생한 폭발적인 트래픽이 스트리밍 차트에 반영되어 ‘히트’라는 객관적인 지표로 증명되는 구조입니다.
이는 70~80년대 일본 시티팝이 한국 젊은 층에게 재조명되는 흐름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좋은 콘텐츠는 시공간과 국적을 초월해 언제든 다시 사랑받을 수 있으며, 이제는 그 속도와 파급력이 플랫폼 덕분에 상상 이상으로 강력해졌다는 걸 이번 사례가 명확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일 양국의 콘텐츠 교류는 이제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훨씬 더 다채롭고 예측 불가능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오늘 당신의 플레이리스트에 추가될 다음 ‘역주행’ 곡은 어느 나라의 어떤 노래가 될까요? 지금까지 휴PD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