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바람이 불면 유독 생각나는 뜨끈한 국물 요리가 있죠. 일본 간사이 지방, 특히 교토의 겨울을 책임지는 가정식 카스지루(粕汁)가 요즘 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바로 교토의 유명 요리 연구가 오오하라 치즈루 씨가 제안하는 실패 없는 레시피 덕분이에요.
단순한 된장국 같아 보이지만, 사케카스(酒粕, 술지게미)의 깊은 풍미와 백된장의 부드러운 단맛이 어우러진, 그야말로 ‘어른의 맛’입니다. 하지만 집에서 만들다 보면 사케카스가 잘 풀리지 않아 덩어리지거나, 텁텁한 맛만 남기 일쑤인데요. 오늘 그 모든 고민을 해결해 줄 ‘결정적 비법’을 짚어보겠습니다.
교토 요리 명가의 딸, 오오하라 치즈루는 누구인가?
먼저 레시피의 주인공인 오오하라 치즈루 씨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녀는 교토의 유명 요리 료칸 ‘미야마소(美山荘)’에서 나고 자란 인물로, 제철 식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는 섬세한 교토 요리를 선보이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그녀의 레시피는 전통에 기반하면서도 가정에서 쉽게 따라 할 수 있어 인기가 높아요. 이번에 화제가 된 카스지루 레시피 역시 일본의 유명 생활 잡지 『오렌지페이지 쿠킹』 2022년 겨울호에 소개되었던 것이 온라인을 통해 다시 알려지며 주목받게 된 경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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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의 원인 ‘사케카스’, 이렇게 다루세요
오오하라 치즈루가 제안하는 레시피의 핵심은 바로 사케카스를 다루는 방식에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케카스를 바로 국물에 넣고 풀려고 하지만, 이것이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이에요. 그녀의 비법은 ‘3단계 희석법’에 가깝습니다.
- 뜨거운 물로 불리기: 먼저 사케카스를 그릇에 담고 뜨거운 물을 약간 부어 부드럽게 불립니다.
- 거품기로 풀기: 화이트 소스 정도의 농도가 될 때까지 거품기로 저어 멍울 없이 곱게 풀어줍니다.
- 다시 국물로 희석하기: 끓고 있는 냄비의 국물을 조금 덜어내 사케카스 그릇에 넣고 다시 한번 섞어준 뒤, 이것을 냄비 전체에 부어 섞는 방식입니다.
이 과정을 거치면 사케카스가 덩어리 없이 국물에 완벽하게 녹아들어 깊고 부드러운 풍미를 낼 수 있습니다. 곤약의 잡내를 잡기 위해 설탕으로 주물러 씻어내는 전처리 과정 역시 교토식 레시피다운 섬세함이 엿보이는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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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 따라 고르는 오오하라 치즈루의 두 가지 카스지루
사실 오오하라 치즈루는 여러 매체를 통해 다양한 버전의 카스지루를 선보여왔습니다. 이번에 화제가 된 『오렌지페이지』 레시피와 NHK 『오늘의 요리』에 소개된 레시피는 주재료와 국물 맛의 결이 조금 다릅니다. 어떤 차이가 있는지 표로 정리해 봤어요.
| 구분 | 『오렌지페이지』 농후 카스지루 | NHK 『오늘의 요리』 연어 카스지루 |
| 주재료 | 무, 당근, 연근, 유부, 곤약 | 염장 연어 머리/뼈(塩ざけアラ) |
| 된장 | 백된장(白みそ)을 사용해 단맛과 부드러움 강조 | 일반 된장과 백된장을 섞어 사용 가능 |
| 특징 | 채소의 단맛과 사케카스, 백된장이 어우러진 진하고 크리미한 맛 | 연어의 감칠맛과 지방이 녹아든 시원하고 깊은 맛 |
| 추천대상 | 부드럽고 구수한 맛을 선호하는 입문자 | 생선의 감칠맛을 즐기는 애주가 |
두 레시피 모두 사케카스를 국물에 풀어 넣는 기본 원리는 같지만, 주재료에 따라 전혀 다른 매력을 보여줍니다. 채소 중심의 진한 국물을 원한다면 오렌지페이지 버전을, 생선의 시원한 감칠맛을 더하고 싶다면 NHK 버전을 참고하면 좋겠네요.
“건더기 가득한 따뜻함” 일본 현지의 인식
일본 현지에서는 카스지루에 대해 어떤 이미지를 가지고 있을까요? 직접적인 SNS 반응 데이터는 부족하지만, 다른 매체의 표현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具だくさんの粕汁 (건더기가 푸짐한 카스지루)”
이는 카스지루가 단순히 국물이 아니라, 무, 당근, 유부, 곤약 등 다양한 재료가 듬뿍 들어간 ‘건더기 많은 따뜻한 요리’로 인식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추운 겨울, 밥과 함께 든든한 한 끼 식사로 사랑받는 이유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죠.
저 휴PD가 보기에 오오하라 치즈루의 카스지루는 한국의 구수한 청국장이나 들깨탕과 비슷한 ‘위로의 음식’ 계보에 있는 것 같습니다. 다만 사케카스라는 낯선 재료가 주는 독특한 발효향과 백된장의 은은한 단맛은 전혀 다른 미식 경험을 선사하죠. 한국에서는 주박(술지게미)을 구하기가 쉽지 않지만, 최근에는 온라인이나 일부 주류 전문점에서 판매하기도 하니 일본 가정식에 관심이 많다면 꼭 한번 도전해 보시길 추천합니다. 레시피의 성공 여부는 결국 ‘사케카스를 얼마나 섬세하게 다루는가’에 달려있다는 점, 잊지 마세요.